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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혼이혼, 장기간의 혼인관계에서 파생되는 고유한 쟁점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가 혼인을 정리하는 황혼이혼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닙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졌고, 그 긴 시간을 지금의 배우자와 보낼 것인가를 다시 묻는 분들이 늘어난 것이니, 개인의 결단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변화가 만들어 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황혼이혼은 무언가 다른 종류의 이혼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은, 이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당사자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판상 이혼사유는 같고, 이혼에 따르는 쟁점이 위자료와 재산분할, 그리고 자녀의 문제라는 구조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황혼이혼이 특별한 것은 법이 달라서가 아니라, 혼인 기간이 길다는 사정이 그 세 가지 쟁점 하나하나에 다른 무게를 싣기 때문입니다. 어떤 쟁점은 사실상 사라지고, 어떤 쟁점은 평생의 결과가 걸릴 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혼에 이르는 길 역시 나이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의사가 맞으면 협의이혼으로 마무리되지만,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민법 제840조가 정한 사유를 갖추어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여야 하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는 사정이 그 문턱을 낮추어 주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혼인이라고 하여 파탄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혼인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는 점을 젊은 부부와 같은 기준으로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혼이혼을 준비하는 일은 새로운 법리를 찾는 일이 아니라, 같은 법리 위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정확히 짚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위자료부터 보겠습니다. 혼인 기간이 길었으니 그만큼 오래 참아 온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커져야 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린 논리가 아니고, 실제로 혼인생활의 경과와 기간은 위자료를 정할 때 참작되는 사정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위자료는 재산의 규모에 비례하여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으로서 법원이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정하는 금액이므로, 혼인 기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증액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황혼이혼에서 위자료가 결과를 좌우하는 쟁점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이유입니다.
자녀의 문제는 대개 자리를 비웁니다. 자녀들이 이미 성년이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친권과 양육권, 양육비의 다툼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의 이혼에서 가장 감정적인 대립을 낳는 쟁점이 빠지는 셈이니, 황혼이혼은 그만큼 재산의 문제로 무게중심이 옮겨 갑니다.
그리하여 남는 것이 재산분할이고, 이것이 황혼이혼의 중심에 놓입니다. 수십 년의 혼인 동안 형성된 재산은 규모부터 다르고, 그 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 기간이 길수록 각자의 기여도 역시 크게 평가될 수 있으므로, 젊은 부부의 이혼에서는 부수적이던 재산분할이 황혼이혼에서는 남은 생애의 경제적 토대를 정하는 문제가 됩니다. 여기에 당사자들이 연금을 받을 나이에 이르러 있다는 사정이 겹쳐, 연금의 분할이라는 항목이 훨씬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다만 연금의 분할과 재산의 분할은 성격이 다릅니다. 국민연금법은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인 사람이 이혼하고, 배우자였던 사람이 노령연금 수급권자이며, 본인이 60세가 된 때에 그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균등하게 나눈 분할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고, 이혼 과정에서 재산분할로 연금의 분할을 달리 정한 경우에는 그에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같은 직역연금에도 같은 취지의 분할 제도가 있습니다. 요건과 분할의 방식이 법률에 정해져 있으니, 연금의 분할은 소송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쟁점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연금이 소송의 쟁점이 되기 어렵다는 것과 연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연금의 효용을 독차지하고 있는 경우라면, 연금을 분할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혼인 중에는 손에 닿지 않던 몫이 이혼을 통하여 자신의 것이 되는 구조이니, 연금은 다툼의 대상이라기보다 결심의 배경에 놓이는 항목인 셈입니다.
반면 재산분할은 다투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대법원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협력에 재산을 취득하는 데의 협력뿐만 아니라 재산을 유지하거나 증식하는 데의 협력도 포함된다고 보고 있는데, 수십 년의 혼인이란 바로 그 유지와 증식의 기간이 그만큼 길었다는 뜻이므로, 장기혼에서 기여도의 평가는 젊은 부부의 이혼과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분할의 규모도 적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자신의 정당한 몫을 인정받으려면 협의에 기대기보다 소송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다투어야 하는 사안이 상당합니다. 오래 산 부부의 재산분할에 관하여는 앞서 다른 글에서 살펴본 바 있으니, 여기서는 그 무게가 다른 쟁점과 견줄 수 없다는 점만 짚어 두겠습니다.
황혼이혼에서 법리보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나이입니다. 이 나이에 무엇을 바꾸겠느냐는 생각, 지금의 생활이 불만족스럽더라도 그것을 뒤흔드는 것이 더 두렵다는 마음이 결정을 미루게 하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라면 이혼 이후의 삶을 새로 꾸릴 시간이 있다고 여기지만, 황혼기에는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변화 자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앞서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최근 다룬 사건 하나가 이 장벽의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1961년에 혼인한 부부의 사안에서, 남편이 부부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주거지의 수용보상금과 함께 농사지어 온 농지 대부분을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남에게 일방적으로 증여하자 아내가 집을 나와 이혼을 청구하였는데, 대법원은 혼인생활 중 부양과 협조를 통하여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주요 부분을 상대방과의 협의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여 가정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을 형해화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혼청구를 배척한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대법원 2025. 9. 4. 선고 2025므10730 판결). 재산의 명의를 가진 쪽이 그 명의를 내세워 상대방의 남은 생애를 위한 대안 없이 재산을 처분하였다면, 그것은 곧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황혼기의 이혼에서 금전적 주도권을 잃는 것이 얼마나 직접적인 위협인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위협 앞에서 나이를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것이 반드시 안전한 선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혼을 통하여 상황을 바꾸는 것이 두렵더라도, 이혼을 하여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황혼기에 불필요한 갈등을 안고 금전적 주도권을 잃을 우려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 남은 생애의 경제적 보장과 심리적 평온을 위하여 소송을 결단하는 편이 나은 경우가 있습니다. 황혼이혼에서 필요한 것은 젊은 부부의 이혼과 다른 법리가 아니라,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커졌는지를 정확히 보고 내리는 결단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