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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실혼의 일방적 파기와 책임, 부당파기 위자료의 법리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아온 지 몇 해가 지났는데 상대방이 어느 날 짐을 싸서 나가 버렸다거나, 혼인신고만 미루어 두었을 뿐 부부로 살아왔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끝내겠다고 통보해 왔다는 상담이 적지 않습니다. 이분들이 공통으로 품고 계신 물음은 하나로서, 혼인신고가 없으니 상대방은 아무런 책임 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실혼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 두어야 하는데, 대법원은 약혼이 장차 혼인을 체결하려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만으로 성립하는 것과 달리, 사실혼은 주관적으로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통념상 가족질서의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실체가 있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8. 12. 8. 선고 98므961 판결). 그러므로 단순한 동거나 교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고, 서로를 배우자로 삼는다는 의사 아래 실제로 부부로서의 생활을 이루고 있어야 사실혼입니다.
그런데 사실혼에는 법률혼과 뚜렷이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법률혼은 협의이혼이든 재판상 이혼이든 반드시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해소되지만, 사실혼은 신고로 성립한 관계가 아니므로 그 해소에도 아무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방이 관계를 끝내겠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별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사실혼은 해소되는 것이고, 상대방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해소가 자유롭다는 것은 곧 책임도 없다는 뜻일까요? 여기서부터가 오늘 살펴볼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실혼을 끝내는 것 자체는 자유이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끝내는 것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대법원은 사실혼관계에 있어서도 부부는 민법 제826조 제1항이 정한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사실혼 배우자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의무를 포기한 경우에는 악의의 유기에 의하여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것이 되고, 상대방 배우자에게 재판상 이혼원인에 상당하는 귀책사유가 있음이 밝혀지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사실혼관계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98. 8. 21. 선고 97므544, 551 판결).
이 판시의 구조를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법률혼 부부와 같은 동거·부양·협조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 출발점이고, 그 의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포기하는 것이 곧 부당한 파기라는 것이며, 파기한 쪽이 책임을 벗어나려면 상대방에게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할 만한 잘못이 있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혼인신고가 없다는 사정은 관계를 끝내는 절차를 면제해 줄 뿐, 관계를 끝내는 이유까지 묻지 않게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위 판결의 사안 자체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생긴 양가의 감정 대립을 빌미로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음을 기화 삼아 단기간에 관계를 파기한 사건이었습니다. 대법원은 혼인생활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은 채 단순한 감정상의 대립을 이유로 파기한 점을 들어 책임을 인정하였으니, 사실혼에서 정당한 이유란 상대방의 잘못이 재판상 이혼사유에 이를 정도여야 하는 것이지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정도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당한 이유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판시가 든 기준은 상대방에게 재판상 이혼원인에 상당하는 귀책사유가 있는가이므로, 상대방의 부정행위나 폭행, 악의의 유기처럼 법률혼이었다면 재판상 이혼사유가 되었을 사정이 있었다면 그 관계를 끝내는 것은 정당한 이유 있는 해소이고 책임이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 상대방에게도 크고 작은 잘못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이혼사유에 이를 정도가 아니라면 파기의 책임 자체는 남는 것이고, 그 잘못은 책임의 유무가 아니라 뒤에서 보는 배상액을 정하는 단계에서 참작될 사정이 될 뿐입니다. 결국 사실혼의 파기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관계를 끝냈다는 사실이 아니라, 끝낼 만한 이유가 상대방 쪽에 있었는가 하는 점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부당파기의 책임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요? 대법원은 사실혼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에는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가 모두 포함되고, 재산적 손해에는 사실혼관계의 성립과 유지에 인과관계가 있는 모든 손해가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대법원 1989. 2. 14. 선고 88므146 판결). 그 사건에서는 혼인을 원만하게 성립시키기 위하여 결혼 전에 상대방에게 지급한 금원과 결혼비용이 배상 범위에 들어갔으니,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외에 결혼을 위하여 지출한 비용까지 문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는 대법원이 그 산정 기준을 밝혀 두었는데, 사실혼 부당파기로 인한 위자료는 증거로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법원이 유책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정도, 파탄의 원인과 책임, 당사자의 연령·직업·가족상황과 재산상태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직권으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액수를 미리 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파기에 이른 경위 전체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니,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보다 어떤 경위로 관계가 끝났는가를 자료로 보여줄 수 있는가가 결과를 좌우하게 됩니다. 아울러 파기당한 쪽에도 관계의 파탄에 기여한 잘못이 있다면 그 과실의 정도가 배상액에 참작된다는 점도 위 88므146 판결에서 확인되므로, 앞서 본 정당한 이유에 이르지 못하는 상대방의 잘못은 바로 이 자리에서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덧붙여 두 가지를 짚어 두겠습니다. 하나는 결혼식과 신혼여행까지 마쳤으나 아직 부부공동생활에 이르지 못한 단계에서 파탄된 경우인데, 대법원은 이 단계가 약혼과는 확연히 구별되고 사실혼에 이른 결합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사실혼 부당파기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위 98므961 판결). 다른 하나는 재산분할로서, 사실혼이 해소되면 부당파기의 책임과는 별개로 함께 이룬 재산의 청산을 구할 수 있는데 이는 책임의 유무와 무관한 문제이므로 위자료와 나누어 생각하셔야 합니다.
정리하면 사실혼은 절차 없이 끝낼 수 있는 관계이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끝낸 쪽은 상대방의 정신적 고통과 결혼에 들인 비용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벗어나려면 상대방에게 재판상 이혼사유에 이를 만한 잘못이 있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합니다. 혼인신고가 없다는 사정이 책임까지 없애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만 이 책임을 실제로 묻기 위해서는 두 단계를 차례로 넘어야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혼이었다는 점, 즉 혼인의 의사와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다음에 관계가 어떤 경위로 끝났는지, 누가 어떤 이유로 파기하였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은 흔히 첫째 단계에서는 그저 동거였을 뿐이라고, 둘째 단계에서는 오히려 이쪽에 잘못이 있었다고 다투게 되므로, 결혼식과 동거 기간, 생활비와 재산의 관리, 양가와의 왕래를 보여주는 자료와 파기에 이른 경위를 보여주는 자료를 함께 갖추어 두셔야 합니다. 관계가 끝난 뒤의 억울함은 자료가 아니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