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책배우자이혼, 예외적 허용의 기준 2026-08-23

 

유책배우자이혼, 예외적 허용의 기준


 

 

1. 유책배우자 이혼청구를 둘러싼 오해

혼인이 사실상 끝났다고 느끼면서도, 파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정 때문에 이혼소송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이 접하는 정보는 대체로 두 갈래인데, 하나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은 파탄만 인정되면 유책배우자라도 다 이혼이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반대 방향의 이야기이지만 부정확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앞의 것은 원칙만 보고 예외를 놓친 설명이고 뒤의 것은 우리 법이 채택하지 않은 태도를 현재의 법인 것처럼 말하는 설명입니다.

실제의 법은 그 사이에 있습니다. 원칙은 유지되고 있고, 예외는 열려 있으며, 그 예외가 인정되는 기준이 판례로 상당히 정밀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 기준을 원칙에서부터 차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유책주의라는 원칙

우리 판례는 재판상 이혼에 관하여 유책주의의 태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으로, 파탄을 만든 사람이 그 파탄을 근거로 혼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배우자를 혼인 밖으로 몰아내는 이른바 축출이혼을 허용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이 정면으로 재검토된 것이 2015년의 전원합의체 판결인데, 대법원은 파탄되었으면 책임을 묻지 않고 이혼을 허용하자는 파탄주의로의 전환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므로 요즘은 파탄이면 다 된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법 상태와 맞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판결이 분명히 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원칙의 유지가 기계적인 기각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책배우자의 청구라는 이유만으로 문전에서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는지를 따져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구조이고, 이 예외의 기준이야말로 이 주제의 본론입니다.

 

3. 예외적 허용의 세 가지 유형

판례가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한 사정은 크게 세 유형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입니다. 유책주의의 취지가 축출이혼의 방지에 있으므로, 상대방 역시 혼인에 남을 뜻이 없다면 원칙을 관철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입니다. 파탄 이후의 부양과 재산적 배려 같은 사후의 행위가 책임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는 것으로, 파탄을 만든 책임은 지우지 못하더라도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평가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유책배우자에게 실천의 여지를 열어 두는 유형입니다.

셋째는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성과 상대방이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입니다. 수십 년의 별거처럼 혼인의 실체가 사라진 지 오래인 사안에서 등장하는 유형입니다. 세 유형 모두에 공통되는 것은, 예외의 초점이 유책성 자체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 유책성이 지금도 이혼청구를 막아야 할 정도로 남아 있는가라는 현재 시점의 평가에 있다는 점입니다.

 

4. 예외 판단의 요소와 최근 판례의 경향

예외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법원은 어느 하나의 사정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종합합니다. 판례가 드는 것만 보아도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태양과 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와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과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파탄 이후의 사정 변경, 이혼이 인정될 경우 상대방 배우자가 놓이게 될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 등에 이릅니다. 목록이 길다는 것은, 같은 유형의 사안이라도 결론이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갈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요소들 가운데 최근 판례가 무게를 옮겨 놓은 것이 상대방의 혼인계속의사입니다. 대법원은 상대방이 소송에서 혼인을 계속할 뜻을 밝혔더라도 그 말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혼인생활의 전 과정과 소송 중에 드러난 언행과 태도,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의 유무 등에 비추어 혼인계속의사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이혼을 거부하지만 실제로는 관계 회복을 위한 아무런 노력이 없는 사안에서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므11112 판결). 진술이 아니라 실질을 본다는 것인데, 이는 파탄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예외 요건을 정밀하게 적용하는 방향의 변화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5. 결론

정리하겠습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그 원칙은 2015년 전원합의체에서 재확인되었지만, 상대방도 혼인계속의사가 없는 경우, 유책성을 상쇄할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로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진 경우라는 세 유형의 예외가 열려 있고, 법원은 책임의 정도에서 별거 후의 생활관계까지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예외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최근 판례는 상대방의 혼인계속의사를 말이 아니라 객관적 태도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준을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책배우자라는 사정은 이혼소송의 문을 닫는 자물쇠가 아니라, 통과해야 할 문턱의 높이를 정하는 사정입니다. 내 사안이 세 유형 가운데 어디에 닿아 있는지, 판단 요소들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는 혼인 기간 전체의 사실관계를 놓고 따져야 알 수 있는 문제이므로, 유책배우자이혼의 예외적 허용 기준이라는 것은 결국 일반론의 목록이 아니라 내 혼인의 역사를 그 목록 위에 올려 보는 작업을 통해서만 답이 나오는 기준인 것입니다. 망설임의 시간에 해야 할 일은 절대 안 된다는 말과 다 된다는 말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판례가 세워 둔 그 기준 위에 내 사안을 정확히 올려 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