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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간소송과 혼인파탄 항변, 주의해야 할 점은?
상간소송의 소장을 받은 분들과 대응을 논의하다 보면, 상당수가 이미 알고 오시는 항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혼인은 내가 만나기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주장, 이른바 혼인파탄 항변입니다. 실제로 상대방 배우자와 오래전부터 별거 중이라거나 사실상 남남으로 지낸다는 말을 듣고 만남을 시작한 분들이 많고, 그런 분들에게 이 항변은 사안 전체를 뒤집을 수 있는 카드처럼 보이기 마련인데, 다른 항변들이 책임의 크기를 줄이는 데에 그치는 것과 달리 이 항변은 성립 자체를 무너뜨려 책임을 아예 없애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항변에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무에서 이 항변이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문턱은 생각보다 높고, 준비 없이 꺼냈다가는 오히려 사건을 불리하게 만드는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항변이 서 있는 법리를 먼저 확인한 다음, 어디까지 가능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결론은 이 항변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세우기 전에 반드시 확인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발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부정행위를 하여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행위가 되지만, 부부가 아직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14. 11. 20. 선고 2011므2997 전원합의체 판결). 보호할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이미 사라졌다면 침해할 대상도 없다는 논리이고, 이 법리는 재판상 이혼청구가 진행 중인지와 무관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판결문의 표현을 그대로 읽어보셔야 합니다. 요건은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장기간의 별거 등으로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객관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각방을 쓴다거나 대화가 끊겼다거나 배우자가 이혼을 입에 올렸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문턱을 넘기 어렵고, 겉으로는 불화가 있어도 생활공동체로서의 외형이 유지되고 있었다면 파탄 상태로 인정받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만나던 상대방이 들려준 우리 부부는 끝났다는 말과, 법원이 인정하는 회복 불가능한 파탄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항변이 실제로 서는 사안의 모습을 그려보면 문턱의 높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부정행위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별거가 상당 기간 이어져 왔고, 생활비나 주거 같은 경제적 공동체도 해소되어 있었으며, 협의이혼 논의나 이혼소송 같은 혼인 해소의 절차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었던 경우처럼,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사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사안입니다. 반대로 같은 집에 살며 가족 행사를 함께 치르고 있었다면, 부부 사이의 애정이 식은 지 오래라는 내밀한 사정만으로는 항변이 서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파탄 여부는 부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점도 놓치기 쉬운 대목이어서, 만남이 시작된 뒤에 그 부부의 혼인이 무너져 갔다는 사정은 이 항변을 세워주지 못하므로, 자료를 살필 때에도 시선은 관계가 시작되기 전의 시점에 맞춰져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그 파탄을 증명해야 하는가입니다. 대법원은 부정행위 당시 그 부부의 공동생활이 실질적으로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있었다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제3자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6. 27. 선고 2022므13504, 13511 판결). 이 사건에서는 원심이 거꾸로 원고에게 파탄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가 대법원에서 파기되었는데, 뒤집어 말하면 항변하는 피고가 파탄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불법행위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피고는 그 부부의 내부 사정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 증명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여기서 이 항변의 위험이 드러납니다. 혼인파탄 항변은 그 성질상 만남 자체는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주장이기 쉽습니다. 파탄을 증명할 자료 없이 이 항변부터 꺼내면, 항변은 배척되고 관계를 인정한 정황만 고스란히 남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살펴본 인정과 부인의 갈림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하는 셈이니, 이 항변을 쓸 것인지는 별거의 시점과 기간, 이혼 절차의 진행 여부처럼 파탄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실제로 확보되는지를 먼저 확인한 뒤에 정해야 하고, 자료가 닿지 않는다면 항변의 자리를 위자료 액수의 다툼으로 옮기는 판단도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파탄의 문턱에는 못 미치는 불화의 사정이라도 위자료 산정에서 참작될 여지는 남아 있으므로, 같은 자료가 항변의 근거로는 부족해도 감액의 사정으로는 쓰일 수 있다는 점까지 놓고 항변의 비중을 정하는 것이 사건 전체를 위한 판단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혼인파탄 항변은 판례가 인정하는 어엿한 법리이지만, 요건은 회복 불가능한 실질적 파탄이라는 높은 수준이고, 그 증명책임은 항변하는 피고에게 있으며, 증명이 닿지 않으면 만남을 인정한 정황만 남기는 양날의 주장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들은 말만 믿고 이 항변에 사건 전체를 걸어서는 곤란하고, 객관적 자료의 유무를 기준으로 항변의 채택 여부와 비중을 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부정행위를 시작할 당시 상대방의 혼인이 정말로 끝나 있었다고 믿었던 분일수록 이 항변에 걸고 싶은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기대가 근거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결국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이므로, 상간소송에서 혼인파탄 항변을 주의해야 한다는 말의 뜻은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세울 수 있는 자리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세우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