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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간녀소송 소장을 받기 전, 미리 연락해서 합의해도 될까?
소송을 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나서 정작 소장은 오지 않는 시간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드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소장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차라리 내가 먼저 연락해서 합의로 끝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실제로 상담에서 무척 자주 받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소송을 예고한 상태인데, 제가 먼저 연락해서 합의를 시도해도 되는 것일까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태로 기다리는 고통보다는 무엇이라도 해서 매듭을 짓는 쪽이 나아 보이고, 소송까지 가기 전에 정리하면 서로 좋은 일 아니냐는 생각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실무에서는 이런 경우 먼저 움직이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합의를 요구해 오거나 내용증명을 보내온 경우에 응하는 것과, 소송 예고만 있는 상태에서 내가 먼저 합의를 제안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직관적인 차원에서부터 살펴보면, 내가 먼저 합의를 제안했는데 상대방이 거부해 버릴 경우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합의는 상대방의 승낙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니 거부당한 제안은 그저 사라질 뿐인데, 문제는 제안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상대방의 기억과 기록에 남는다는 점입니다. 아쉬운 쪽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이후의 모든 국면에서 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모양의 문제도 있는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쪽은 상대방인데 배상할 쪽이 먼저 얼마를 드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 자체로 어색한 그림이고, 이 어색함은 단순히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 구도의 문제입니다. 청구하는 쪽이 요구액을 제시하기도 전에 지불하는 쪽이 먼저 제안을 하면, 그 제안액은 협상의 출발점이 아니라 바닥이 됩니다. 상대방으로서는 그 금액을 확보해 둔 채 그 위에서부터 올려 부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보다 훨씬 무거운 문제가 있으니, 소송을 예고당한 쪽이 먼저 합의를 제안하는 행위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한 가지 사실, 즉 이 사람이 소송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소장이 오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기다림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는 신호이고, 협상에서 상대의 절박함을 확인한 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합의금이라는 것은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양쪽의 사정과 심리가 부딪히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것인데, 선제 제안은 내 쪽의 사정,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분을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부 보여주고 들어가는 셈입니다. 그래서 선제 제안 이후에 합의가 진전되더라도 그 합의는 극도로 불리한 조건 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려움을 이미 확인한 상대방은 서두를 이유가 없고, 시간을 끌수록 이쪽의 절박함이 더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합의로 빨리 끝내려던 시도가 오히려 더 무겁고 더 늦은 합의로 돌아오는 역설이 여기서 생겨납니다.
협상의 관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장 전의 선제 제안은 상대방에게 아무런 비용 없이 정보만 넘겨주는 수여서, 상대방은 제안을 받아 둔 채 소송 준비를 계속할 수도 있고 제안을 거절해 이쪽의 초조함을 키운 뒤 더 큰 요구로 돌아올 수도 있으며, 어느 쪽을 택하든 잃는 것이 없습니다. 반면 이쪽은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부터 이미 노출된 절박함을 안고 다음 국면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해는 없으셔야 하는 것이, 먼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 상대방의 연락을 무시하거나 잠적하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먼저 합의를 요구해 오거나 내용증명을 보내온다면 그때는 응답 여부와 조건을 검토할 국면이 열린 것이고, 그 국면의 대처는 별도로 논할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소송을 예고만 한 상태에서 이쪽이 스스로 협상 테이블을 열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다림을 견디는 일,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준비하는 일로서, 소장이 오면 다투게 될 사실관계를 스스로 정리해 두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와 상담하여 사안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가늠해 두는 것입니다. 사안을 알고 기다리는 사람과 모른 채 떠는 사람은 같은 소장을 받아도 전혀 다른 자리에서 협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정말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때는 절차 안에서 다투면 되고 절차 안에서도 조정과 화해라는 합의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소송이 시작되면 합의의 문이 닫힌다는 생각도 흔한 오해인 것입니다. 다만 이 모든 판단에는 사안마다의 사정이 얹혀야 하니, 상대방의 예고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어 있는지와 증거의 상태에 따라 기다림의 무게도 준비의 내용도 달라지는 만큼, 먼저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수록 그 판단만큼은 혼자 내리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소송 예고 상태에서 먼저 연락해 합의를 시도하는 것은, 거부당하면 방법이 없고, 협상의 바닥을 스스로 제시하는 셈이 되며, 무엇보다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행위이므로, 이후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극도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선제 제안은 그 마음을 가장 크게 외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장을 받기 전에 미리 연락해서 합의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협상의 관점에서 보면 내 사정을 숨기고 상대의 다음 수를 기다리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고, 그 자세를 지킨 채 준비하며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이후의 합의든 소송이든 내 자리를 지켜주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