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간소송 피고 대응, 인정과 부인의 갈림길에서 2026-08-19

 

상간소송 피고 대응, 인정과 부인의 갈림길에서


 

 

1. 소장을 받은 피고 앞에 놓인 첫 번째 물음

상간소송의 소장을 받은 분들이 대응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물음은, 의외로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부인할 것인가입니다. 소장에는 관계의 시작과 경과, 만남의 횟수와 장소, 주고받은 연락의 내용까지 원고가 파악한 사실관계가 원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 피고는 인정인지 부인인지의 태도를 정해야 하는데, 그 갈림이 이후 소송 전체의 골격이 되어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다툼의 전선이 달라지고 제출할 증거가 달라지며 종국에는 판결이 서는 자리까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갈림이 왜 그토록 무거운지, 그리고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결론은 무조건 부인하라는 쪽도 깨끗이 인정하라는 쪽도 아닙니다. 갈림의 기준은 감정이나 요령이 아니라 사안마다 다른 증거의 상태이고, 그래서 이 판단에는 정답 대신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2. 갈림이 무거운 이유, 인정과 침묵의 법적 효과

먼저 인정 쪽의 무게부터 보면, 소송에서 상대방의 주장과 일치하는 불리한 사실을 인정하면 그 사실은 증명이 필요 없는 것으로 확정되고, 한 번 한 자백을 되돌리는 것은 진실에 어긋난다는 점과 착오였다는 점을 함께 증명해야 하는 매우 좁은 길이어서, 답변서의 문장 하나로 원고의 증명 부담을 대신 덜어주는 셈이 될 수 있으므로 인정은 신중하게 범위를 정해서 해야 합니다.

덜 알려진 것은 침묵의 효과인데, 민사소송에서는 상대방이 주장하는 사실을 명백히 다투지 아니하면 그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는 자백간주 제도가 있습니다. 소장의 주장 가운데 일부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다투지 않은 부분은 인정한 것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답변서는 인정할 것과 다툴 것을 빠짐없이 갈라서 밝히는 서면이어야 하고, 모르는 사실이라면 모른다고 진술하는 것 역시 하나의 태도입니다. 알지 못한다는 진술은 다툰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장의 주장 앞에서 피고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인정, 부인, 부지의 셋이고, 이 셋을 사실관계 항목마다 의식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3. 갈림의 기준, 감정이 아니라 증거의 상태

그렇다면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사실을 다투어야 할까요? 기준은 하나로 모이는데, 그 사실에 관하여 원고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증거가 법정에서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객관적인 자료로 뒷받침되는 사실을 무리하게 부인하면, 증거 앞에서 부인이 무너지는 순간 그 부분만 지는 것이 아니라 서면 전체의 신빙성이 함께 무너지고, 재판부에 비친 피고의 태도라는 무형의 자산까지 잃게 됩니다. 반대로 원고의 주장 가운데 증거 없이 추측으로 쌓아 올린 부분,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까지 함께 인정해 버리면 책임의 범위가 실제보다 넓게 그려집니다.

그래서 실무의 대응은 전부 인정과 전부 부인 사이 어딘가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관계의 존재는 인정하되 원고가 주장하는 기간과 정도를 다투는 길, 만남의 사실은 인정하되 부정행위라는 평가를 다투는 길, 개별 사실은 대체로 인정하면서 혼인 파탄과의 인과나 위자료 액수를 다투는 길처럼, 인정의 층위는 생각보다 여러 겹입니다. 어느 층위에 전선을 그을 것인지가 바로 전략이고, 그 판단을 위해서는 소장에 첨부된 증거뿐 아니라 원고가 아직 내지 않았을 증거까지 가늠해야 합니다. 지금 보이는 증거만 놓고 부인의 전선을 그었다가 뒤늦게 나온 자료에 전선이 뚫리는 것이 가장 뼈아픈 전개이기 때문입니다.

원고가 아직 내지 않은 증거를 가늠하는 단서는 소장 안에 있습니다. 날짜와 장소가 구체적으로 특정된 주장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뭉뚱그려진 주장은 추측에 기대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장을 감정으로 읽으면 억울한 대목만 보이지만 증거의 눈으로 읽으면 원고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지의 윤곽이 보이고, 답변서의 전선은 바로 그 윤곽 위에 그어져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판단에서 감정은 좋은 조언자가 아닙니다. 억울함이 앞서면 다툴 수 없는 것까지 부인하게 되고, 죄책감이 앞서면 다툴 수 있는 것까지 인정하게 됩니다. 양쪽 모두 사건을 실제보다 나쁘게 만드니, 소장을 읽고 감정이 정리되기 전에 서면부터 쓰지 않는 것, 이것이 갈림길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규율입니다.

 

4. 갈림 이후의 두 갈래 경로

갈림을 정하고 나면 소송은 두 갈래의 경로로 정리되는데, 책임을 다투는 쪽에 전선을 그었다면 이후의 심리는 부정행위의 존재와 정도에 관한 증명 다툼이 중심이 되고, 원고의 증거를 탄핵하고 반대 사실을 세우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반면 책임을 인정하는 쪽에 섰다면 다툼의 무게는 액수의 국면으로 옮겨 가서, 관계의 경위와 기간, 혼인관계가 놓여 있던 상태, 사후의 태도와 같은 사정들을 주장하고 증명하는 일이 중심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경로가 요구하는 준비가 서로 다르다는 점으로, 증명 다툼의 경로에서는 원고 증거의 약점을 찾는 눈이 필요하고, 액수의 경로에서는 참작될 사정을 자료로 만드는 손이 필요합니다. 갈림을 정하지 않은 채 대응하면 이 준비가 어느 쪽으로도 깊어지지 못하고, 서면마다 태도가 흔들리는 인상만 남습니다. 앞서 첫 서면이 사건의 골격이 된다고 말씀드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골격이 서야 살을 붙일 곳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5. 갈림길에서 필요한 것, 정답이 아니라 판단의 방법

정리하겠습니다. 상간소송 피고의 대응은 인정과 부인의 갈림에서 시작되고, 그 갈림은 자백의 구속력과 침묵의 자백간주라는 제도 때문에 되돌리기 어려운 무게를 갖습니다. 갈림의 기준은 감정도 일반론도 아닌 증거의 상태이고, 실제 대응은 전부 인정과 전부 부인 사이의 여러 층위 가운데 내 사안의 증거 지형에 맞는 자리를 찾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정해져야 이후의 증명 다툼이든 액수 다툼이든 준비가 한 방향으로 깊어질 수 있습니다.

같은 소장을 받아도 증거의 지형은 사안마다 다르므로, 남의 사례에서 가져온 정답은 내 사건에서 오답이 되기 쉽습니다. 갈림길에서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이 이기는 길이라는 단언이 아니라, 내 사안의 증거를 원고의 눈으로 한 번, 재판부의 눈으로 또 한 번 읽어보는 냉정한 평가입니다. 그 평가 위에서 그어진 전선이라야 소송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전선이 되고, 인정과 부인의 갈림길은 그렇게 사안을 아는 만큼만 바르게 건널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