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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간소송 답변서 혼자 작성하면 안 되는 이유
상간소송의 소장을 받은 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답변서를 직접 써 볼 생각을 하십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답변서 양식과 작성례가 어렵지 않게 나오고, 어차피 내 일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굳이 비용을 들여야 하는가 싶은 마음도 들기 때문이고, 사정이 급박하지 않은 소액 분쟁이라면 그런 판단이 합리적인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상간소송의 답변서에 관한 한, 직접 작성이라는 선택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위험이 여럿 숨어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혼자 쓰면 반드시 잘못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답변서라는 서면이 소송에서 어떤 무게를 갖고, 직접 작성한 서면에서 실제로 어떤 문제들이 되풀이되는지를 보여드리려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제대로 알고 나면 이 서면을 어떤 태도로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도움이 필요한지는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사소송에서 답변서를 비롯한 소송 서면의 기재는 일상의 말과 전혀 다른 효력을 갖습니다. 법원에서 당사자가 자백한 사실, 곧 상대방의 주장과 일치하는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증명이 필요 없는 사실로 확정되어 그 뒤로는 원고가 그 부분을 증명할 필요조차 없어지고, 이를 되돌리려면 그 자백이 진실에 어긋난다는 것과 착오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을 함께 증명해야만 합니다. 말이 쉽지, 한 번 인정한 사실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게다가 착오였음까지 증명한다는 것은 실무상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직접 작성한 답변서에서는 이 자백이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데, 사과의 뜻을 보이려고 쓴 문장이나 사정을 설명하려고 쓴 문장이 법의 눈에는 사실의 인정으로 읽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취지의 서두, 관계의 경위를 해명하며 늘어놓은 구체적인 사실들이 원고가 증명해야 할 사실을 대신 채워 주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본인은 예의를 갖추었다고 생각한 문장이, 기록 위에서는 다툼 없는 사실을 하나씩 늘려 주고 있는 셈입니다.
직접 작성된 답변서들을 보면 문제가 되는 유형이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첫째는 감정의 서면화로서, 소장의 과장된 표현에 격앙되어 원고 부부의 사정을 들추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 지면을 쓰는 유형인데, 법원이 답변서에서 읽으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인정하는 사실과 다투는 사실의 구분입니다. 감정이 앞선 서면은 쟁점을 흐릴 뿐 아니라, 소송에 임하는 태도라는 면에서도 득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전략 없는 전면 부인으로, 증거가 이미 뚜렷한 부분까지 통째로 부인하고 보는 유형으로,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증거 앞에서 부인이 무너지는 순간 서면 전체의 신빙성이 함께 무너집니다. 앞서 본 자백의 반대편에 있는 실수이지만, 사건을 그르치는 힘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구조의 부재인데,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사실을 다투는지, 다투는 부분의 근거는 무엇인지가 정리되지 않은 채 시간 순서의 해명만 이어지는 서면은, 재판부에 이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조차 전달하지 못합니다.
이 유형들의 공통점은 글재주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다툴 것인가, 어떤 사실이 법적으로 의미가 있고 어떤 사실이 군더더기인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은 채 서면부터 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답변서 작성의 실체는 문장 작성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이고, 판단이 서지 않은 서면은 아무리 정성 들여 써도 방향 없는 항해가 되는 것입니다.
덧붙여, 서면에 쓴 내용은 지울 수 없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답변서는 상대방에게도 송달되어 원고가 그 내용을 검토하고 다음 서면을 준비하는 재료가 되고, 사건 기록의 일부로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재판부의 책상 위에 남아 있게 됩니다. 감정에 실려 쓴 한 문단,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인정해 버린 한 줄이 몇 달 뒤의 변론기일에 상대방의 준비서면 속에서 인용되어 돌아오는 장면은, 소송을 겪어 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흔한 일입니다. 말은 흘러가지만 서면은 남고, 소송은 남은 것들로 판단됩니다.
이 대목에서 답변서라는 서면의 성격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답변서는 상대방에게 보내는 사과문도, 재판부에 올리는 반성문도 아닙니다. 소장 부본을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제출해야 하고 내지 않으면 청구원인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아 변론 없이 판결이 선고될 수 있는, 절차상의 효과가 조문으로 정해져 있는 소송행위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태도가 필요한 국면이 있고 사실관계를 치밀하게 다투어야 하는 국면이 있는데, 그 갈림을 정하는 것 역시 감정이 아니라 증거의 상태에 대한 판단입니다.
간혹 답변서에 최대한 공손하게 쓰면 판사님이 선처해 주지 않겠느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소송에서의 태도가 참작 사정의 하나가 될 수는 있으나 공손한 문장이 사실의 인정을 대신 물러 주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강하게 써야 이긴다는 조언을 어디선가 듣고 오시는 분들도 계신데, 서면의 강한 어조가 증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면의 힘은 어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정과 부인의 경계를 정확히 긋고 다투는 부분을 자료로 받치는 데서 나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답변서를 혼자 작성하는 일이 위험한 것은 문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서면이 재판상 자백이라는 되돌리기 어려운 효과를 낳을 수 있고, 인정과 부인의 갈림이라는 사건 전체의 방향을 첫 서면에서 정하게 되며, 그 갈림의 판단에는 증거의 상태와 법리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결국 대필을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이 판단을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소장을 받으셨다면, 답변서 양식을 찾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으셔야 합니다. 나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다툴 것인지 판단이 서 있는가.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증거의 상태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는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서면 작성이 아니라 판단이고, 그 판단에 관한 한 혼자보다는 함께가 안전하다는 것 — 이것이 답변서를 혼자 작성하면 안 된다는 말의 실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