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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혼인취소소송의 요건과 효과, 이혼소송과의 차이에 대하여
혼인취소에 관한 상담은 대개 비슷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이혼 말고 혼인취소로 하는 방법은 없겠는지 묻는 것입니다. 짧은 질문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기대가 겹쳐 있습니다. 이 혼인을 처음부터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다는 기대, 가족관계등록부에 이혼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기대, 그리고 배우자의 잘못이 워낙 중대하니 통상의 이혼과는 다른 이름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기대입니다.
이러한 심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혼인기간이 길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자가 혼인 전에 무언가를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라면, 이 혼인을 자신의 이력으로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견디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그 기대가 법률적으로 성립하는지 여부입니다. 혼인취소는 이혼보다 가벼운 절차도 아니고 이혼을 대신하는 절차도 아니며, 민법이 정한 특정한 사유에 해당할 때에만 법원이 판결로써 인정하는 별개의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더 짚어야 할 것은, 설령 혼인취소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많은 분들이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혼인취소 판결이 확정되어도 그 혼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고,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아래에서 혼인취소의 요건과 효과를 차례로 살펴보면서, 혼인무효 및 이혼과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지를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혼인관계를 법적으로 해소하는 절차는 크게 셋입니다. 혼인의 무효, 혼인의 취소, 그리고 이혼입니다. 이 셋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직관적인 축은 어느 시점의 사정을 문제 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혼은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였음을 전제로, 그 이후에 발생한 사정을 이유로 혼인관계를 장래를 향하여 해소하는 절차입니다. 재판상 이혼사유를 정한 민법 제840조가 부정행위, 악의의 유기, 심히 부당한 대우 등을 열거하고 있는 것도 그 사유들이 모두 혼인 이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혼인의 무효와 취소는 혼인이 성립하던 그 시점의 흠을 문제 삼습니다. 민법 제815조는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를 비롯한 네 가지를 무효사유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혼인이라는 신분행위의 성립 자체를 인정할 수 없거나 사회질서상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아무런 효력이 없으므로, 소송은 이미 무효인 상태를 확인받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혼인의 취소는 그 중간에 놓여 있습니다. 혼인 성립 당시에 흠이 있기는 하나 그 흠이 혼인을 처음부터 부정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 경우로서, 일단은 유효한 혼인으로 취급하되 취소를 구하는 청구가 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하였을 때 비로소 혼인관계가 해소됩니다. 요컨대 무효는 이미 효력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이고, 취소는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는 혼인을 판결로써 없애는 절차인 셈입니다.
민법 제816조는 혼인취소의 사유를 세 가지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혼인의 성립요건을 위반한 경우입니다. 혼인적령인 18세에 이르지 못한 사람의 혼인(제807조), 미성년자나 피성년후견인이 필요한 동의를 받지 아니한 혼인(제808조), 근친혼 금지에 위반한 혼인(제809조), 그리고 배우자 있는 사람이 다시 혼인한 경우인 중혼(제810조)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들 중에서도 제815조가 무효사유로 정하고 있는 유형은 취소가 아니라 무효의 문제가 됩니다.
둘째는 혼인 당시 상대방에게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惡疾)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경우입니다(제816조 제2호). 조문의 표현만 보면 상당히 넓게 읽힐 여지가 있으나, 대법원은 이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여 해석합니다.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4므4734, 4741 판결은 배우자에게 성기능 장애와 선천적인 성염색체 이상, 무정자증이 있었던 사안에서 이를 제816조 제2호의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임신가능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여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정한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와는 문언의 내용이 다르므로 그 인정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같은 사정이 이혼사유로는 검토될 수 있어도 혼인취소사유로는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 이 판결이 보여주는 것은 두 제도 사이의 그 간격입니다.
셋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입니다(제816조 제3호). 실무에서 가장 자주 검토되는 유형으로, 혼인 전의 중대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속였거나 고지하여야 할 사항을 숨긴 경우가 문제됩니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사기는 혼인의사의 결정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 혼인 후에 알게 된 실망스러운 사정이나 통상적인 과장이 모두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유의 해당 여부 못지않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청구권자와 기간입니다. 취소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사유별로 달리 정해져 있고(제817조, 제818조), 취소청구권은 대체로 짧은 기간 안에 소멸합니다. 악질 기타 중대사유는 그 사유 있음을 안 날로부터 6개월(제822조), 사기나 강박은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로부터 3개월(제823조)이 지나면 더 이상 취소를 청구하지 못합니다. 동의 없는 혼인은 당사자가 19세가 된 후 3개월이 지나거나 혼인 중에 임신한 때에, 근친혼은 당사자 사이에 혼인 중 포태한 때에 각각 취소를 구할 수 없게 됩니다(제819조, 제820조).
반면 중혼과 혼인적령 위반에 대하여는 이러한 소멸사유가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판례는 이를 두고 중혼 등의 반사회성과 반윤리성이 다른 취소사유에 비하여 한층 무겁다고 본 입법자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3. 8. 24. 선고 92므907 판결). 다만 같은 판결은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진 중혼 취소청구가 구체적 사정에 따라서는 권리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도 보았습니다. 기간 제한이 없다는 것이 언제든 행사할 수 있다는 뜻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혼인취소를 검토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바로 그 효과입니다. 민법 제824조는 혼인의 취소의 효력은 기왕에 소급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법률행위의 취소가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으로 되는 것과 달리, 혼인의 취소는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장래를 향하여 효력이 생깁니다.
이 원칙에서 여러 결론이 따라 나옵니다. 취소되기 전까지의 혼인은 유효한 혼인이었으므로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혼인 중의 출생자이고, 그동안 형성된 재산관계와 부양관계도 유효한 혼인을 전제로 정리됩니다. 그래서 혼인취소의 경우에도 자녀의 양육에 관한 사항과 면접교섭권에는 이혼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고(제824조의2), 친권자의 지정과 재산분할 역시 혼인의 취소를 원인으로 하여 청구할 수 있습니다(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제2호 나목 마류사건 4)·5)). 혼인의 무효 또는 취소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도 인정됩니다(제825조, 제806조). 결국 사후 정산의 구조만 놓고 보면 혼인취소는 이혼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절차의 측면에서도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혼인의 취소는 가사소송법상 나류 가사소송사건이어서 조정전치주의가 적용됩니다. 소를 제기하기에 앞서 먼저 조정을 신청하여야 하고, 조정을 거치지 않고 소를 제기하면 법원이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게 됩니다(가사소송법 제2조, 제50조). 반면 혼인의 무효는 가류 사건이어서 조정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합의로 처분할 수 있는 사항인지 여부에서 이러한 차이가 비롯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기록의 문제도 분명히 해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혼인취소의 재판이 확정되면 소를 제기한 사람은 확정일부터 1개월 이내에 그 취지를 신고하여야 하고(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73조, 제58조), 그 내용은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됩니다. 혼인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취소로 해소되었다는 사실이 남는 것이지,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이혼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혼인취소를 떠올리셨다면, 이 점을 가장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혼인취소는 사실상 열리지 않는 문처럼 읽힐 수 있습니다. 사유가 한정되어 있고, 판례는 그중 하나를 엄격히 제한하여 해석하며, 제척기간은 3개월 또는 6개월로 짧습니다. 실제로 요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사안에 대하여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씀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뒤늦게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간과 비용만 소모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이에 정작 필요했던 조치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건이 엄격하다는 것과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특히 사기를 이유로 한 혼인취소는 사안에 따라 진지하게 다투어볼 만한 유형이고, 이때 실무상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기간입니다.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이라는 기간은 배우자와 대화를 시도하고 양가와 상의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지나가 버립니다. 사유의 성립 여부를 따지기 전에 남은 기간부터 헤아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법률의 경계선에 놓인 사안이라면, 하나의 청구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성이 필요합니다. 실무에서는 혼인무효를 주위적 청구로, 혼인취소를 그 예비적 청구로, 다시 이혼을 그 뒤의 예비적 청구로 세워 소송에 들어가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앞선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법원이 뒤의 청구를 판단하게 되므로, 혼인관계의 해소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구성은 각 청구의 성립 가능성과 그에 따르는 부담을 미리 설명받고 선택하여야 할 문제이지, 일단 넣어 두면 손해볼 것이 없는 절차는 아닙니다.
결국 혼인취소가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두 개의 질문으로 나뉩니다. 내 사안이 민법이 정한 세 가지 사유 중 하나에 해당하는가, 그리고 아직 청구할 수 있는 기간 안에 있는가. 어느 한쪽이라도 답이 부정적이라면 혼인취소는 선택지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남은 길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혼인 성립 당시의 사정으로 취소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 사정이 이혼 절차 안에서 달리 평가될 여지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사유의 문제인지 기간의 문제인지부터 정리하시고, 그 위에서 어떤 절차를 선택할 것인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