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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약금의 법적 성질: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구별
계약 당사자가 계약이 깨질 경우를 미리 예상해 일정 금액을 정해 두는 관행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로마법에도 이미 위약금 약정이 있었고, 근대 민법전들 역시 대부분 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채무불이행이 발생했을 때 실제 손해가 얼마인지 사후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분명하더라도 그 액수를 특정할 객관적 기준이 없다면, 채권자는 권리가 있어도 이를 충분히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위약금 약정은 바로 이러한 간극을 당사자의 합의로 미리 메워 두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제도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긴장이 내재해 있습니다.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르면 당사자가 스스로 정한 약정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리 정해 둔 금액이 실제 발생한 손해와 현저히 동떨어져 있다면, 법이 그 약정을 그대로 관철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법원이 개입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국 이는 계약자유와 법원의 개입 사이에서 어디에 경계를 그을 것인지의 문제이며, 위약금을 둘러싼 많은 분쟁이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부정행위가 발각된 이후 작성되는 각서나 합의서에는 '다시 만날 경우 얼마를 지급한다'는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때 금액은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고, 담보하려는 의무도 재산적 급부가 아니라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부작위 의무입니다. 여기에 위반으로 인한 손해 역시 정신적 고통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계량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위약금 조항의 법적 성질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어떤 법률효과가 달라지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민법은 위약금을 언제나 동일한 성질의 약정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같은 형태의 위약금 조항이라도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일 수도 있고 위약벌일 수도 있으며, 어느 쪽으로 판단되는지에 따라 법률효과도 상당히 달라집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당사자가 미리 정해 두는 약정입니다(민법 제398조 제1항). 핵심은 손해를 전보하는 데 있습니다. 채권자는 채무불이행 사실을 증명하면 되고 손해의 발생이나 구체적인 액수를 별도로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실제 손해가 예정액보다 크더라도 원칙적으로 그 초과분을 추가로 청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실제 손해배상청구를 미리 정한 금액으로 대신하는 제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약벌은 성격이 다릅니다. 채무의 이행을 심리적으로 강제하기 위해, 약정 위반 자체에 대한 제재로 부과되는 금액입니다. 따라서 손해의 전보와 직접 연결되지 않으며, 손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실손해가 있다면 위약벌과는 별개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두 제도를 구별해야 하는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감액 가능성에 있습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 감액 규정은 위약벌에는 적용되지 않고, 유추적용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판례의 확립된 태도입니다. 위약벌은 금액이 지나치게 과도하여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평가되는 경우에 민법 제103조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제도의 성격에서 비롯됩니다. 손해배상 예정액은 손해배상을 대신하는 금액이므로 실제 손해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기준으로 과다 여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약벌은 애초에 손해와 무관한 제재이므로 '얼마가 적정한가'를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손해배상액의 예정에는 감액이라는 조정 방식이 인정되는 반면, 위약벌에는 공서양속 위반 여부를 통한 보다 제한적인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이분법이 언제나 만족스러운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민법 제343조는 위약벌이 불상당하게 과다한 경우 채무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상당한 액수로 감액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전부 또는 일부의 무효 여부로 통제하는 우리 법의 방식이 다소 경직적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며, 위약벌에 대해서도 감액을 허용하자는 입법론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사적 제재의 성격이 강한 약정일수록 오히려 법원의 세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논의입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입법론의 영역이고, 현행법의 해석에서는 앞서 본 구별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별 위약금 조항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민법 제398조 제4항은 위약금의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해석상의 참고 기준을 넘어 증명책임의 분배와도 관련됩니다. 따라서 위약금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위약벌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위약벌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이를 뒷받침할 특별한 사정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 쪽에 추정을 두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인이 다른 사인에게 독자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식은 근대 법질서가 원칙적으로 예정하는 형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재권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유보되어 있고, 사법의 영역에서 당사자 사이에 오가는 금전은 통상 손해의 전보와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위약금을 우선 손해배상의 문제로 보고, 제재로서의 성격을 인정하려면 별도의 근거를 요구하는 구조가 법체계에도 부합합니다.
이 추정 규정은 실무에서 실제 다툼의 구도를 좌우합니다. 약정된 금액 전액의 지급을 구하는 측은 감액 규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위약벌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아 감액 여부를 심사하게 됩니다. 지급을 다투는 측에서는 이러한 추정 규정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판례는 위약금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를 구체적인 사건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의사해석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 계약서에 사용된 명칭이나 문구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계약 당사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 체결의 경위와 내용, 위약금 약정을 하게 된 경위와 교섭 과정, 약정의 주된 목적, 위약금으로 이행을 담보하려는 의무의 성격, 채무불이행 시 위약금 외에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위약금의 규모와 전체 채무액에 대한 비율, 예상되는 손해액의 크기, 당시의 거래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대법원 2020. 11. 12. 선고 2017다275270 판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약정의 명칭이 판단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결론을 정하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약서에 '위약벌'이라고 적혀 있더라도 실질이 손해의 전보에 있다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당사자가 사용한 법률용어의 명칭만으로 법원이 구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의사표시 해석의 일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위약벌로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은 계약의 전체 구조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계약 안에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예정 조항이나 실손해 배상 조항이 따로 존재하고, 그와 별도로 위약금 조항까지 두고 있어 해당 위약금까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면 이중배상이 되는 경우입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를 전보하는 기능을 다른 조항이 이미 담당하고 있다면, 별도로 둔 위약금 조항은 제재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는 해석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약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인정되면 다음으로는 감액 여부를 살펴보게 됩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의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지위, 계약의 목적과 내용,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동기와 경위, 채무액에 대한 예정액의 비율, 예상 손해액의 크기, 당시의 거래관행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판례는 이러한 사정을 고려했을 때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공정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부당히 과다한 경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감액이 단순히 법원이 임의로 베푸는 조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하다고 평가될 때 비로소 감액이 문제되며, 그 판단에서는 누가 어떤 경위로 금액을 정했는지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스스로 금액을 제시하고 자필로 기재했다면, 이후 과다함을 주장하는 데 불리한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위반의 시기와 횟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정 직후 짧은 기간 안에 반복하여 위반했다면, 약정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사정보다는 오히려 위반의 중대성을 보여주는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이 일부 감액했다는 결과만으로 위약금 약정 자체가 무력하다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액 이후 인정되는 금액이 통상의 사건에서 인정되는 손해배상액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위약금 약정은 손해배상의 수준을 미리 정하고 높이는 기능을 할 수 있으며, 감액은 그 범위를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법리를 부정행위 이후 작성되는 각서나 합의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이 유형의 약정에서 담보하려는 의무는 보통 '배우자와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작위 의무이고, 위반으로 발생하는 손해는 배우자가 겪게 되는 정신적 고통입니다. 정신적 손해는 금액을 산정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 두는 약정의 실익이 특히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실제 합의서의 문구 역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시 만날 경우 손해배상으로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형식은 문언상 손해의 배상이나 전보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위약벌이라는 표현이 따로 없고, 위약금 조항과 별개의 손해배상 조항도 없어 이중배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위약벌로 볼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경우 민법 제398조 제4항의 추정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되고, 이후 감액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쟁점이 다투어진 사건 중에는 각서에 적힌 위약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면서 예정액을 상당 부분 감액한 사례도 있습니다. 다만 감액 이후 인정된 금액 역시 통상의 부정행위 위자료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사례가 있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구조와 연결됩니다.
한편 각서 자체의 효력을 강박을 이유로 다투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사건에서는 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성 당시 상황이 녹음 등으로 남아 있고, 그 자료에서 작성자가 스스로 문구나 금액을 정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강박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해당 자료가 상대방에게 유리한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위약벌로서의 효과를 명확히 의도한다면 합의서의 구조 자체를 다르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해배상에 관한 조항과 제재 성격의 위약금 조항을 분리하는 방식이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위약벌이라고 하더라도 민법 제103조에 따른 통제가 남아 있으므로, 현실성을 잃을 정도의 거액을 기재하는 것이 언제나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위약금을 둘러싼 분쟁은 서명 이후의 공방 못지않게 서명 이전에 어떤 구조로 약정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정행위 이후 합의서를 작성하는 시점은 당사자들이 냉정하게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부정행위가 드러난 직후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충분한 법률적 검토 없이 몇 줄의 문장이 작성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몇 줄의 문장이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당사자의 법률관계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법이 이러한 약정에 개입하는 방식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에는 감액을, 위약벌에는 무효 여부의 심사를 두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는 사적 자치를 존중하면서도, 그 약정이 언제나 충분히 자유롭고 균형 잡힌 판단의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점을 함께 고려한 구조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98조 제4항이 위약금을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는 것 역시 사인 사이의 제재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취지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합의서에 기재하는 금액은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구가 아니라 실제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의사표시입니다. 따라서 금액뿐 아니라 어떤 의무를 담보하는지, 손해배상과 위약금의 관계를 어떻게 정하는지 등 문언과 구조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이후의 분쟁에서도 약정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