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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적자기결정권침해, 기혼사실을 속인 연인에 대한 대처방법
상대방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교제가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이때 혼인사실을 속은 사람은 다소 복잡한 법적 지위에 놓이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기망의 피해자로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으로 기혼자와 교제한 사람이 되어 상대방의 배우자로부터 이른바 상간소송을 제기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잠재적인 피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유형의 사안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입니다. 이 권리는 우리 법에서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2009년 헌법재판소가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으로 판단할 당시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국가 형벌권의 개입을 제한하는 논거로 기능했습니다. 반면 오늘날 민사재판에서는 기혼사실을 속인 사람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같은 개념이 형사 영역에서는 자유를 보호하는 논리로, 민사 영역에서는 책임을 판단하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적 자기결정권의 법적 근거를 확인한 뒤, 형사적 구제에 한계가 있는 이유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의 요건, 그리고 상대방 배우자가 제기할 수 있는 상간소송과의 관계까지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유형의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소송은 단순히 속인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속은 사람의 법적 지위를 정리하고 향후 분쟁에 대비하는 의미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법률 조문에 그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는 권리는 아닙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어 있고, 그 안에는 성행위의 여부와 상대방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에 관한 결정은 개인의 인격과 밀접하게 연결된 내밀한 영역이므로, 그 결정의 주체는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결정'이 단순히 외부의 강제가 없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사실관계에 관하여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자기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미혼인지 기혼인지는 교제와 성적 관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기혼사실을 숨긴 채 미혼인 것처럼 행동했다면, 속은 사람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기망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평가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와 같이 보면 강제에 의한 침해와 기망에 의한 침해의 차이도 보다 분명해집니다.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적 관계를 강요하는 경우가 자기결정의 '자유'를 직접 침해하는 것이라면, 혼인사실을 숨기는 행위는 자기결정의 전제가 되는 '정보의 기초'를 훼손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형상 당사자의 합의에 따른 관계처럼 보이더라도, 진실을 알았다면 같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합의의 의미를 법적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인사실을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응 중 하나는 형사고소입니다. 다만 기혼사실을 숨기고 교제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이유를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형법 제304조에는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사람을 처벌하는 혼인빙자간음죄가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9. 11. 26.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습니다(헌재 2008헌바58, 2009헌바191 병합). 성인이 어떤 사람을 애정행위의 상대방으로 선택할지는 국가가 개입을 자제해야 할 내밀한 사적 영역이고, 이를 형벌로 통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오히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후 해당 조항은 2012년 형법 개정으로 삭제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위헌결정에서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논거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형벌을 통해 성인의 사적 관계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자기결정권과 충돌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기혼사실을 숨긴 행위 자체는 기망으로 볼 수 있지만, 형법상 사기죄는 사람을 속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를 처벌하는 범죄입니다. 즉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기망의 결과로 재산적 이익이 침해되어야 합니다. 교제나 성적 관계 자체는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혼인사실을 속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일반적으로 사기죄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미혼인 것처럼 속이면서 금전을 편취하는 등 별도의 재산적 피해가 함께 발생했다면, 그 부분은 별개의 사기죄 문제로 검토될 수 있습니다.
결국 기혼사실을 숨긴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법적 책임은 형사보다 민사의 영역에서 주로 문제됩니다.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사정이 곧 아무런 법적 구제수단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형벌의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당사자 사이의 민사상 책임은 별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행위를 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법 제751조는 신체, 자유, 명예의 침해뿐 아니라 그 밖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인정합니다. 기혼자가 혼인사실을 숨기고 미혼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교제한 경우, 그 기망으로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정신적 고통을 가한 불법행위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하급심 재판례에서도 이러한 법리구성에 따라 위자료 지급을 인정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위자료 액수는 기망의 내용과 정도, 교제 기간, 혼인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지,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정해지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청구를 검토할 때에는 청구하는 사람 자신의 혼인 여부도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자신도 기혼자인 상황에서 상대방의 기혼사실을 몰랐다는 이유로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를 주장하는 경우에는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혼자의 교제는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관계에서 부정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그 위에서 이루어진 자기결정을 어느 범위까지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당사자의 혼인 상태와 구체적인 관계의 경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의 범위도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망에 의한 침해가 문제되는 핵심 기간은 상대방의 기혼사실을 알지 못했던 때입니다. 혼인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만남은 더 이상 같은 의미의 기망을 전제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칙적으로는 속아 있던 기간을 중심으로 침해 여부가 판단됩니다.
이번에는 상대방 배우자의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소송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혼자와 교제한 사람은 상대방 배우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이른바 상간소송을 제기받을 수 있습니다. 제3자가 부부 중 한 사람과 부정행위를 하여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한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배우자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책임이 성립하려면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상간소송에서는 통상 상대방이 배우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다. 상대방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구체적인 사정에 비추어 알기 어려웠다면 부정행위에 대한 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인식 여부에 대한 증명은 소송에서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소송과 상간소송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기혼사실을 알지 못한 채 속아서 만났다'는 하나의 사실이 한쪽에서는 속인 상대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근거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대방 배우자의 청구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어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 기망당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될수록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청구의 근거는 강해지고, 동시에 상간소송에서 고의나 과실을 부정하는 근거도 보다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두 소송이 사실관계의 측면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기망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고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스스로를 미혼이라고 소개한 대화, 혼인 여부를 직접 물었을 때 이를 부인한 내용, 미혼인 것처럼 생활을 설명하거나 행동한 정황 등은 두 소송 모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관계가 진행되던 시기의 자료를 가능한 한 객관적인 형태로 정리해 두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이 됩니다.
실제 사건은 교과서처럼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가 어느 시점에 혼인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관계를 즉시 정리하지 못한 채 만남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관계 전체를 하나로 묶어 보기보다, 기혼사실을 알기 전과 후의 기간을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혼인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만남이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전의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주장이 당연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뒤늦게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이전에 속아 있던 기간의 기망이 소급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혼인사실을 몰랐던 기간에 이미 발생한 침해를 기초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관계가 지속되었다는 사정은 위자료 액수나 전체적인 사실관계의 평가에서 고려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속았던 피해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상간소송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혼인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만남이 이어졌다면, 그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는 '기혼자임을 알고도 관계를 지속했다'는 사정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 배우자가 이 기간의 사실관계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인지 이후의 관계에 대한 책임이 별도로 검토될 수 있습니다. 결국 속아 있던 기간은 손해배상청구의 근거가 될 수 있고, 알고도 만난 기간은 반대로 책임을 부담할 위험이 생기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유형의 사건에서는 속아 있던 기간과 혼인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기간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그 사이에 어떤 대화와 행동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속아 있던 기간이 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지 이후의 만남이 비교적 짧게 끝났다면 상간소송에 대한 방어와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청구를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인지 이후의 관계가 상당 기간 이어져 상간소송의 부담이 커진 경우에는 먼저 상간소송에서 책임 범위를 정리한 뒤, 이후 구상금청구 단계에서 기망으로 인한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사정을 함께 주장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부정행위를 주도한 경위나 혼인사실을 속인 사정은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의 부담부분을 판단할 때 고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방식이 적절한지는 기간의 구조와 증거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침해 소송을 고민하는 분들은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법적으로 이 소송이 갖는 의미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법적 지위를 정리하는 데에도 있습니다.
먼저 이 소송은 향후 분쟁에 대비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이 혼인사실을 숨겼다는 점과 자신이 이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증거로 정리되고 판단의 대상이 된다면, 추후 상대방 배우자가 상간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중요한 방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두 소송은 동일한 사실관계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기망의 피해자였다는 사실관계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은 잠재적인 피고 지위에 대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소송은 관계를 법적으로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기혼자와의 관계가 남기는 것은 정신적 상처뿐만 아니라, 앞으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에 대한 법적 불안정일 수 있습니다. 침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면서 기망의 경위와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관계를 법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는 절차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미 상간소송의 압박을 받고 있다면, 상대방의 기망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입증하는 방향으로 대응 구조를 바꾸는 의미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대응은 결국 증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신이 속았다고 느꼈다는 사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상대방이 실제로 미혼인 것처럼 행동하거나 설명했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관계가 진행되던 당시의 대화 내용과 각종 정황 자료를 보전하고 정리하는 일이 어느 방향의 소송을 검토하든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위헌결정은 성적 영역에 대한 국가 형벌권의 개입을 제한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역이 법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형사처벌의 범위가 줄어든 자리에서도 민사상 책임은 별도로 문제될 수 있고, 특히 기망으로 인해 성적 관계에 관한 자기결정이 왜곡되었다면 그 침해를 손해배상의 문제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혼사실을 속인 연인과의 관계는 감정적으로는 배신의 문제이지만, 법적으로는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혼인사실을 알지 못했던 기간과 알게 된 이후의 기간을 구분하고, 각 시점에 어떤 증거가 남아 있는지 확인한 뒤 어떤 청구와 방어를 선택할지 검토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결론은 사안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출발점은 결국 상대방의 혼인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그 전후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객관적인 자료로 정리하는 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