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혼예물 반환, 파혼의 책임에 따라 달라지는 것 2026-08-04

 

약혼예물 반환, 파혼의 책임에 따라 달라지는 것


 

들어가며

혼인을 앞두고 오간 예물과 예단은, 관계가 순조로울 때에는 누구의 것인지를 따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파혼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과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맞서고, 그 다툼은 감정이 가장 격해진 시기에 시작됩니다.

이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예물이 법적으로 어떤 성질의 재산인가입니다. 주고받은 물건의 값이나 누가 먼저 파혼을 말했는지보다, 그 성질 규정이 결론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약혼예물의 법적 성질에서 출발해, 반환이 인정되는 경우와 제한되는 경우가 무엇으로 갈리는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약혼예물의 법적 성질 — 조건이 붙은 증여

대법원은 약혼예물의 수수를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 봅니다(대법원 1976. 12. 28. 선고 76므41, 42 판결, 대법원 1996. 5. 14. 선고 96다5506 판결 등).

해제조건이라는 말이 낯설 수 있으니 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건이 성취되면 이미 발생한 효력이 사라지는 조건을 해제조건이라고 합니다. 예물은 혼인이 이루어질 것을 전제로 오가는 것이므로, 혼인이 성립하지 않으면 그 전제가 무너집니다. 그러면 증여의 효력이 유지될 근거가 사라지고, 원칙적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서 예물이 왜 오가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판례는 약혼예물이 약혼의 성립을 증명하고, 혼인이 성립한 경우 당사자와 양가의 정을 두텁게 할 목적으로 수수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목적이 혼인의 성립에 있는 것이므로, 그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면 반환이 문제되고 달성되면 반환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구조입니다. 이 하나의 성질 규정에서 아래의 결론들이 모두 따라 나옵니다.

 

원칙에 붙는 제한 — 파혼에 책임이 있는 쪽

혼인이 성립하지 않았으니 돌려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에 중요한 제한이 붙습니다. 파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제공한 예물의 반환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약혼예물의 수수가 혼인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의 것이기는 하나, 약혼의 해제에 관하여 과실이 있는 유책자로서는 그가 제공한 약혼예물을 적극적으로 반환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76. 12. 28. 선고 76므41, 42 판결).

이 부분이 독자들이 가장 많이 놓치는 지점입니다. 내가 준 물건이니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파혼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 그 파혼을 근거로 자기 재산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것을 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먼저 파혼을 통보했는지가 아니라 파혼에 이르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통보한 쪽이 곧 책임 있는 쪽인 것도 아닙니다.

이 구조 때문에 반환 문제는 자연히 파혼의 경위를 살피는 일로 이어집니다. 무엇이 있었고 그로 인해 관계가 어떻게 깨졌는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반환 여부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혼인이 성립해 이어진 뒤라면

약혼 단계에서 끝난 경우와 달리, 혼인이 일단 성립하여 어느 정도 이어진 뒤에 관계가 끝난 경우는 다르게 봅니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단 부부관계가 성립하고 그 혼인이 상당 기간 지속된 이상 후일 혼인이 해소되어도 예물의 반환을 구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대법원 1996. 5. 14. 선고 96다5506 판결). 앞서 본 성질 규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론입니다. 예물이 향하던 목적, 곧 혼인의 성립이 이미 달성되었으므로 해제조건이 성취될 여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예물을 받은 쪽이 혼인 당초부터 성실히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었고 그로 인해 파국을 초래하였다고 인정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신의칙과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혼인 불성립의 경우에 준하여 반환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혼인할 뜻이 없으면서 예물만 받아 간 경우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목적 달성의 문제입니다. 혼인이 실제로 이루어져 부부로서의 생활이 이어졌다면 예물은 그 목적을 다한 것이고, 그런 실질이 애초에 없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예물·예단·혼수·혼례식 비용의 구별

다음으로 짚을 것은 무엇이 반환의 대상인가입니다. 흔히 하나로 묶어 생각하지만, 성질이 달라 결론이 갈릴 수 있습니다.

약혼예물은 앞서 본 것처럼 혼인의 성립을 전제로 당사자 사이에 오가는 증여입니다. 예단 역시 양가의 정을 두텁게 할 목적으로 오가는 것이어서 예물과 비슷한 맥락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혼수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혼인 후의 생활에 쓰기 위해 마련하는 물건이므로, 누가 마련해 누구의 생활에 편입되었는지에 따라 귀속과 반환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혼례식 비용은 또 다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준 재산이 아니라 혼인의 성립을 위해 지출한 비용이므로, 예물 반환과 같은 틀로 다루기 어렵고 손해배상의 문제로 접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급심 판결 가운데에도 혼례식 비용과 예물·혼수를 구분하여 판단한 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돌려받고 싶은지부터 항목별로 나누어 정리하셔야 합니다. 전부를 한 덩어리로 청구하면 성질이 다른 것들이 섞여 판단이 어려워지고, 정작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까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청구를 준비할 때 정리해야 할 것

실제로 반환을 다투게 되면 두 갈래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무엇을 누가 언제 제공했는지입니다. 예물과 예단은 오간 경위가 문서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입 영수증이나 카드 내역, 계좌 이체 기록, 예물을 착용하거나 전달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처럼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아 항목별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목록이 정리되지 않으면 청구의 범위 자체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하나는 파혼의 경위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책임의 소재가 반환 여부를 좌우하므로, 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끝나게 되었는지를 뒷받침할 자료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은 대화나 당시의 정황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한 가지 유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하는 일방적인 행동은 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받은 예물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반환 요구에 아무런 응답 없이 버티거나,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행을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시기의 대응은 기록으로 남아 파혼의 경위를 판단하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다툼이 있더라도 절차 안에서 정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위자료와는 별개의 청구

마지막으로 구분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물 반환과 위자료는 별개의 청구입니다.

예물 반환은 조건이 붙은 증여가 그 조건의 성취로 효력을 잃었으므로 재산을 돌려달라는 것이고, 위자료는 부당하게 약혼을 파기당하여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민법도 약혼해제와 손해배상을 별도의 조문으로 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06조). 근거가 다르므로 요건도 따로 판단되고, 하나가 인정된다고 하여 다른 하나가 당연히 따라오지 않습니다.

부당한 파혼으로 인한 손해배상 자체는 그 나름의 요건과 쟁점이 있어 별도로 정리해 두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두 청구가 다르다는 점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리

약혼예물의 수수는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혼인이 성립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반환의 문제가 생기지만, 파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제공한 예물의 반환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수 없습니다. 파혼을 먼저 통보했는지가 아니라 파혼에 이르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기준입니다.

혼인이 성립하여 상당 기간 이어진 뒤라면 반환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받은 쪽이 처음부터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었고 그로 인해 파국에 이른 경우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달리 볼 수 있습니다.

예물·예단·혼수·혼례식 비용은 성질이 달라 결론이 갈릴 수 있으므로 항목별로 나누어 정리해야 하고, 청구를 준비하려면 무엇을 누가 언제 제공했는지에 관한 자료와 파혼의 경위에 관한 자료가 함께 필요합니다. 예물 반환과 위자료는 근거가 다른 별개의 청구라는 점도 구분해 두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반환이 인정될지는 파혼의 경위와 책임의 소재, 오간 물건의 성질과 확인 자료에 따라 달라집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무엇이 오갔고 어떤 경위로 관계가 끝났는지를 자료로 정리하신 뒤,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받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